박광재(2021-12-21 13:29:20, Hit : 276, Vote :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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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청소년 시절 신구약 성경을 애독하던 중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 사역과 선거제도를 재발견한 때는 주후1967년 경이다. 지금도 신림동에 있는 왕성교회(담임 길요나 목사, 원로목사 길자연)의 전신인 봉신제일교회를 지금은 고인이되셔서 천국에 계시는 이무호 목사님을 모시고 나의 부친 박리남 장로님을 비롯한 소수의 성도들이 닭장에서부터 개척하였다.

닭장으로 사용하던 사육장에 가마니를 깔고 호롱 등잔불을 켜며 산소통을 걸고 종을 치는 개척교회를 설립하였다. 아마도 봉신제일교회는 출옥성도들이 세운 재건교회와 더불어 신림동에 세워진 최초의 장로교회였다. 그 당시 힌국장로교회가 사분오열된 모습을 안타깝게 어기신 이무호 목사님께서는 신림동 골짜기에 소아시아에 존재했던 일곱교회처럼 일곱교회를 개척하여 세우신 첫번째 교회였다.

언젠가 한국장로교회가 하나로 합쳐지면 그때 가서 장로교회에 가입할 것을 목표로 초교파적으로 교회를 일곱개나 개척하셨다. 이목사님의 가족들은 대림동에 살고 계셨다. 그리고 이목사님은 혼자 신림동으로 들오셔서 봉신제일교회 뒷편에 부쳐서 마련한 두세평 남짓한 임시 사택에 거쳐하시면서 교회를 돌보고 계셨다.

어느날 이목사님께서 나의 부친 박리남 장로님께 박장로님의 넷째 아들 박광재 선생을 나와 함께 교회를 돌보며 봉사하도록 허락해 주면 감사하겠다고 요청하셨다. 그 요청을 받으신 나의 아버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목사님께서 네가 교회로 들어와서 목사님과 함께 살면서 봉사하면 좋겠다고 부탁하셨다. 그러니 이목사님을 도와서 교회를 봉사하면 어떻겠느냐? 고 물어 보셨다.

그 당시는 하루에 밥 한끼도 제대로 먹기 어렵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식사는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나 칼국수를 먹던 시절이었다. 그런까닭에 이무호 목사님의 요청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서 주후 1967년부터 거쳐를 봉신제일교회로 옮겨서 이무호 목사님과 교회 뒷편에 마련한 사택에 함께 살면서 오늘날로 말하면 사찰노릇을 하였다.

그 당시 내가 한 일이란 날마다 촤임벨로 사용한 새벽종을 치는 일과 아침과 점심과 저녁에 식사를 마련하여 이목사님을 대접하는 일과 낮에는 이목사님과 함께 교회주변의 땅을 좀 더 넓게 확보하기위하여 삽과 곡괭이와 리어거를 끌고 다니면서 흙을 파서 옮기는 일과 비가 올경우 성도들이 교회를 올라오는 흙벼래 계단이 허물어지면 계단을 다시 보수하는 일 등을 하였다.

20대의 청소년으로서는 견디기 매우 힘든 일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에서 봉사한다고 하는 사실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노동과 같은 일을하고 나면 피곤하여 잠에 골아떨어 지기가 일수이다. 그러나 새벽 종을 처야한다는 부담감에 긴장하면서 잡을 청한다. 그러면 새벽역에 광재야 하고 부르시는 이무호 목사님의 음성이 들린다.

깜짝 놀라서 깨어나 목사님 저를 부르셨어요 ? 하고 물으면 아니하셨다. 나는 분명히 나를 부리시는 목사님의 음성을 듣고 깨어난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시계를 확인해 보면  새벽 첫종을 쳐야할 시간이었다. 아마도 내가 피곤하여 골아 떨어져 잠자고 있는 나를 불쌍히 여기사
나를 깨우시기 위하여 그렇게 이목사님의 음성으로 나를 깨우신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네 그와 같은 현상은 나로하여금 새벽종만을 치라고 하신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하나님의 콜링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기도하며 성경을 읽는 가운데 깨닭은 사실은 어린 사무엘이 대제사장 엘리를 모시고 하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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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게 에서누릇했그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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