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재(2022-06-26 07:08:52, Hit : 53, Vote : 28
 도성 (道聲) 박광재 목사 그는 과연 열방의 선지자인가 ? (1)

도성 (道聲) 박광재 목사 그는 과연 열방의 선지자인가 ?
2022-06-14 (화) 11:42

보낸사람
He Jung Park<hjesusholic@gmail.com>
받는사람
<7022jy@naver.com>, 박광재<holylot@naver.com>
도성 (道聲) 박광재 목사 그는 과연 열방의 선지자인가 ? 거짓 선지자인가 ? 자칭 선지자인가 ?
나는 왜 ? 나를 가르쳐서 감히 열방의 선지자 라고 호칭하는가 ? 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또는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연재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1)

선지자를 논할 때  다음의 세가지 부류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참선지자요. 둘째는 거짓선지자요. 셋째는 자칭선지자이다. 참선지자는 하나님의 필요에 의하여 선지자의 사명을 받고 보내심을 받아 외치는 자이다. 거짓선지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가 아니라 사탄의 미혹을 받거나 자신의 생각을 외치는 자이다. 자칭선지자는 하나님의 보내심과 사명을 받지않고 교만하여 자기 스스로 자기를 가르쳐 선지자라고 자칭으로 선지자인 척하는 자이다.

오늘날로 실예를 들어서 말하면 전광훈 목사와 같은 자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전광훈 목사는 광화문 애국집회를 주도하면서 자신을 가르쳐 한 때는 자칭 선지자라고 호칭하였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애국성도들이 점점 많아지니까 교만해 져서 자신을 높이며 온갖 욕설을 퍼 부으며 도가 지나쳐서 이제는 자신을 일컬어 나는 선지자라고 호칭한다.

참선자자는 그 입으로 선포하고 예언한 사실이 그대로 성취되어야만 한다. 그렇치 않으면 그는 거짓선지자 이거나 자칭 선지자일 뿐이다. 선지자는 구약시대나 존재했었지 신약시대와 오늘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자세하게 읽어 볼 것 같으면 선지자는 구약에 만 존재한 인물이 아니라 신약 성경에도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이처럼 신약 시대에도 선지자들이 `여러사람 등장한다. (행11:27)

내가 열방의 건지자인가? 거짓 선지자인가? 자칭 선지자인가?에 대한 팩트는 성삼위 하나님만이 아실 일이다. 문제는 이시대에 내가 나를 가르쳐 열방의 선지자라고 말하는 근거와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와 숙제의 답은 이제부터 서술할 진솔한 나의 70평생 삶의 고백과 43년 동안의 목회사역이야기와 53년 동안의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 사역이야기를 읽는 독자들께서 판단해야할 몫이다.

구슬이 서말이 되어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나의 일생의 삶과 사역의 보따리를 풀고 그 속에 고이 고이 간직해 두었던 보배로운 진주와 같은 이야기들을 꺼내어 꿰나가려고 필을 들었다. 나의 삶 73년 동안과 거룩한 제비뽑기 사역 53년 동안과 목회사역 43년 동안 겪고 기억의 창고에 고이 쌓아 놓았던 진주와 도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꺼내서 진주목거리와 도 같은 보배로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여간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긴하지만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나를 통하여 이루신 그분의 주권적인 역사 히스토리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하여 필을 들었다.

< 우리 박씨 문중의 기독교 전래 이야기>

< 나의 출생과 송밀례 조모님의 이야기 >

< 나의 고향 강화도와 교동교회 이야기>

나는 지금으로부터 53년 전 신구약 성경을 애독하고 연구하는 중에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 라고 하는 성삼위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과 선거제도를 재발견하였다. 그리고 나의 삶50년 동안과 목회사역에서 40년 이상을 적용해 보았다.

내가 성경속에서 제비뽑기라고 하는 사역과 선거제도를 재발견한 장소는 오늘날 관악구의 신림동에 위치하고 있는 왕성교회(원로목사:길자연, 담임:길요나 목사)의 전신인 봉신제일교회에서였다. 봉신제일교회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나의 며 신앙의 멘토이신 이무호 목사님께서 세우신 교회였다.  이무호 목사님께서는 선견지명이 계셨다. “지금은 신림동이 관악산 골짜기 끝자락에 붙어있는 작은 동내에 불과하지만 장차 신림동은 크게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신림동 골짜기에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세아에 일곱교회가 존재했듯이 봉신제1교회를비롯하여 봉신제7교회까지 모두 일곱교회를 설립하셨다. 이무호 목사님께서는 일제시대에 만주의 봉천에서부터 기독교 정화운동을 전개해오신 교회개혁자이셨다. 한국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사분오열된 모습을 보시며 안타까워 하시면서 장차 한국교회가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 우리도 하나된 예장합동교단에 복귀하여 귀속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가정은 신림동으로 이사오기 전 남산기슭에서 살았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께서 남산을 정화하고 공원화하기위하여 남산 기슭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신림동 골짜기로 강제 이주시켰다.그리하여 나도 중학교 3학년 재학시절에 보모님을 따라서 신림동으로 이사오게 되었고 서대문에 있는 인창중학교를 통학하며 다니게 되었다. 그 당시 신림동골짜기에는 버스조차도 다니지 않았다. 그리하여 매일 8km 즉 20리가 넘는 상도동 장승백이 삼거리까지 걸어 가서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서 서대문까지 중학교를 다녔다.

막상 신림동에 이사오니 그 당시 신림동에는 남산에서 강제 이주당한 난민촌과 공용주택과 주변에 연씨 가문의 문중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는 정도였다. 교회라고는 재건파에 소속된 교회가 하나있었고 이무호 목사님께서 설립하신 봉신제1장로교회가 하나있었다. 우리 박씨가문은 조상 대대로 감리교단을 섬기는 집안이었다. 나의 부친 박리남 장로님은 총각시절부터 강화도의 교동도에 존재하고 있는 교동교회 장로님으로 장립을 받으신 분이시다.

그 당시에 나는 육신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어린 까닭도 있었지만 감리교회 밖에는 다닌 일이 없었고 감리교회 외에 다른 교회 즉 장로교회는 다녀서는 안되는 이단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모님께서 봉신제1교회를 출석하시게 되었음으로 자식된 도리로 나도 봉신제1교회를 출석하게 되었다. 그 당시 봉신제1교회는 개척한지 불과 체 1년도 안된 교회였던 까닭에 교인이라고는 이무호 목사님과 우리가정과 몇분의 성도들이 전부였다.

신림동 하천 옆에 있었던 봉신제1교회는 모권사님께서 닭장으로 사용하던 비닐 하우스에서 부터 개척을 시작하였다. 교회 바닦에는 멍석 가마니를 깔고 예배를 드렸고 밤에는 호야 등잔불을 켜면서 예배를 드렸다. 종은 LPG 깨스통을 걸어 놓고 쳤었다. 나는 비록 어린 청소년이었지만 내 나름대로 교회의 일을 열심히 봉사하였다. 닭장에서 개척을 시작한 교회가 약간 부흥이 되자 교회 장소를 신림동 사거리의 작은 동산 언덕위로 옮겨서 부럭크로 30평 남직한 성전을 건축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의 부친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이무호 목사님께서 너로하여금 교회에서 목사님과 함께 살면서 일하면 좋겠다고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너의 생각은 어떠냐고 물어 오셨다. 그 당시는 우리 집안은 아버님께서 사업에 실패하시고 워낙 가난한 살림이어서 하루세끼 먹기도 힘든 때였다. 학교를 중퇴하고 하루하루를 정부에서 시행하던 사방공사 즉 관악산에서 내려오는 신림동 하천에 쌓여있는 모래와 자갈등을 수거하는 일을 할 경우 한달에 겨우 밀가루 한포대를 배급받아서 가족들이 함께 먹고 살아야만 했다.

십대의 청소년으로서 날마다 뜨거운 뙤약 빛이 내려 쬐이는 하천에 나가서 사방공사 일을 하는 것도 힘들고 벅찼거니와 배가 고파서 견디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이무호 목사님께서 나를 교회에서 봉사하도록 배려해 주신다니 감사한 마음과 순종하는 마음으로 봉신제1교회의 사찰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하루의 일과는 새벽예배를 알리는 초종과 재종을 알리는 촤임벨을 치고 새벽예배를 드리고 낮에는 이무호 목사님과 함께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흙을 파서 리아카에 실어서 성전터를 넓히는 일을 하였다.

때로는 장마비가 와서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언덕위에 있는 교회를 올라오는 흙벼레 계단이 무너지면 그것을 다시 보수하는 일들을 하였다. 그러니 잠도 많은 청소년 시절에 얼마나 피곤하였겠는가 ? 그러므로 밤이 되면 잠을 푹 자야하는 데 새벽예배를 알리는 종을 쳐야 하는 까닭에 긴장하면서 잠을 자야 했다. 어느날은 너무 피곤하여 골아 떨어져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광재야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깨어나서 옆방에서 주무시는 이목사님께 저를부르셨어요 ? 하고 여쭤 보면 ‘아니’ 하셨다.

나는 분명히 목사님께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깨어 났는데 목사님께서는 아니라고 말씀하시니 이상했다. 그러나 시계를 보니 새벽기도회를 알리는 초종을 쳐야할 새벽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한 일들을 수차례 경험하였다. 그 당시나는 하나님께서 나는 불쌍히 여기사 새벽기도회의 종을 치라고 깨워주셨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콜링을 받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깨닭은 사실은 그 때 하나님께서 이무호 목사님의 음성으로 나를 깨워주신 것은 새벽종을 치라고 만 깨워주신 것이 아니라 나를 주의 종으로 부르신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마치 어린 사무엘이 실로에 있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봉사하며 잠을 잘때 엘리 제사장의 음성으로 부르심과 방불하다 할 것이다. 봉신제1교회에서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 때에는 비교적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을 애독하였다. 그런데 성경을 읽을 때마다 내 눈에는 유독 제비뽑기 라고 하는 글자가 보였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난 제비뽑기에 관한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성령의 조명을 받으며 연구하였다.

그러한 신앙생활을 영위하다가 하나님의 콜링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신학교 재학시절 학우회장을 선출할 때 내가 성경의 방법대로 제비를 뽑아서 회장을 선출하자고 제안하여 회장선출을 성경의 제비뽑기로 선출하였다. 당시 학우회장을 선출할 때 어떤 방법으로 선출할 것인가를 놓고 민주주의 선거방식인 다수결의로 하자, 추대하자, 자원하자는 등등 의견들이 분분하였다. 그때 나는 제안하기를 성경의 방법대로 제비를 뽑아서 선출하자고 제안하였다.

우리는 성경대로 믿고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표준으로 삶고 사는 신학도들인 데 신구약 성경은 초대 왕사울도 제비로 뽑았고, 주님의 11사도들이 가룟인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보선할 때도 제비뽑아 세웠으니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표결에 부친 결과 찬반동구가 되었다.

그리하여 정회를 하고 오늘 밤에 각자 기도하고 기도응답을 받고 내일 다시 모여서 회장을 선출하기로 하였다. 제일 연장자였으며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이재춘 학우는 제비뽑기가 무엇이냐 다수결의로 회장을 뽑으면 되지 하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그날 밤을 새우며 철야기도를 하였다. 하나님 오늘 학우회장을 선출하다가 박광재 학우가 제비를 뽑자고 제안하여 정회를 하였습니다.

제비뽑기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 방언기도로 물어 보았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제비뽑기는 내 방법이다. 성경의 인선 방법이다. 너는 왜 내 방법이요. 성경의 방법을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 하시며 자신을 책망을 하셨다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새벽에 나를 만나서 어제 밤에 있었던 영적인 경험을 말하면서 오늘 오후에 다시 모여서 학우회장 선출을 제비뽑기로 하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회장과 부회장으로서 사명을 감당할 충분한 자격을 갖춘 두사람을 천거하고 회장이라고 쓴 제비 하나와 부회장이라고 쓴 제비 하나 총두개의 제비를 만들어서 주머니에 집어 넣고 천거된 두사람이 나와서 각각 제비를 뽑은 결과 이재춘 학우가 회장으로 제비 뽑히고 다른 후배 후보가 부회장 제비를 뽑음으로 은혜가운데 학우회를 조직하였다.

나는 신학교 재학시절 국가의 부르심을 받는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군입대를 앞에 놓고 나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군대가서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가능하면 군종부로 부대 발영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 당시만 해도 군대 풍토란 신앙생활 하기가 매우 어렵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군입대 날자가 닦아와서 나는 논산훈련소에  입대하였다.

6주 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나는 일반하가로 착출되어 여산에 있는 하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0개월 동안의 하사관 훈련을 이수하고 대전에 있는 군통신학교로 이동하여 713 모로스부호 통신훈련을 받았다. 나의 의지와는 달리 그 당시에 김신조 특공부대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기 위하여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이 발생하여 국가에서는 전군간부화의 일환으로 논산훈련병들가운데 사상이 분명하고 건장한 군인가운데 일반하사를 착출하였다.

모르스 통신 훈련을 받는 가운데 깨달은 사실은 작전명령을 전달할때 부호하나만 잘못 전달해도 작전에 실패할 수있으며 전부대가 전멸 당할 수도 있다고 하는 사실이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야 하는 사명을 받은 주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일점일획이라도 잘못 전달할 경우 영적인 전투에서 패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진리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일반 하사관으로서의 모든 훈련을 받고 하사로 진급하여 전방20사단 포사령부 예하 70포대로 갔다. 그 이튼 날 저녁 알파포대의 행정병인 문관호 일병이 나와 맹용진 이병과 또 한사람의 김이병을 알파포대로 인솔해 갔다. 알파포대에 도착하니 저녁 식사후에 연병장에서 부대원들이 족구를 하고 있었다. 부대로 새로 전입온 신입병들이 도착한 것을 본 부대원들을 족구를 서둘러 마치고 연병장에 집합하였다.

신입 부대원들의 신고식을 거행하기 위하여서 였다. 내가 대표하여 포대장에게 전입신고를 하고 나니 전입절차에 따라서 부대원들이 일제히 노래 일발 장진을 복창하였다. 나는 이때다 싶어 나의 신앙을 고백하고 나의 신앙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각인시키고 싶은 마음에서 주 예수의 강림이 불원하니 저 천당 복얻을 자 회개하라는 찬송을 힘차게 불렀다.
내 노래를 들은 부대원들은 우리부대에 지독한 예수쟁이가 한명 들어왔구나 싶은 생각들을 하는 듯 싶었다.

그 당시 일파포대장은 포대장으로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였다. 포대를 부임할 때 쌀 10가마 정도가 부족한 상태에서 부대를 인수받았다. 이러한 상태에서 상급부대에서 검열이 나올 경우 징계를 받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일종계와 부대 상급자들이 마음 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대원들에게 지급해야할 쌀을 팔아 먹던 시절이 었다. 그러므로 쌀을 신속하게 채워 놓아야하는데 마침 신학교를 다니다가 부대에 전입한 박하사를 보니 믿음직 스러웠던지 나에게 일종계 임무를 맡겼다.

일종계가 하는 일이란 하루에 세번 부대원들이 먹을 양식을 내주는 일이 주업무였다. 그러므로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 나는 그 기간을 이용하여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었다. 내가 군에 입대하기 전 신앙생활 잘할 수있는 부대로  인도해 달라고 드린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포대는 일년에 몇 차례 실전과 같은 포사격 훈련을 나간다. 그 때마다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포대장은 출전에 앞서서 박하사 앞으로 나와서 기도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나는 부대원들의 안전과 이왕이면 우리부대가 훈련을 1등을 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그 때 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런데 1등을 하고 나면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부대원들이 훈련을 잘해서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고 술에 취해서 방탕한 짓을 자생하였다. 나는 이러한 꼴들이 보가 싫어서 이번에는 2등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 일도 있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도 들어주셨다.

이러한 일들이 거듭되면서 부대원들은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구나 ! 하나님은 박하사의 기도를 잘들어 주시는 구나 ! 하나님은 박하사의 하나님이시구나 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 당시 우리 20사단(군종목사 : 김태동 목사)은 전군 신자화 운동의 일환으로 매일 점호시간이 끝나면 각부대 군종사병들이 5분예배를 드린 후에 취침하곤 하였다. 그 결과 예수믿는 사병들이 많아져서 한국군 역사상 최초로 3478명이 20사단 연병장에 모여서 당시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을 비롯한 100여분의 목사님들을 초청하여 진중세례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나는 군복무를 하는 가운데 군종하사 및 내무반장과 일종계를 겸하여 1인3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부대원중 한사병이 일종창고에 들어와서 라면이며, 건빵이며, 보급식료품을 도둑질해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나는 점호시간에 경고하였다. 향후10일 동안 자수할 기회를 주겠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득질할 경우 도득질하는 사병을 잡아내겠다.

어떤 방법으로? 성경에 나타난 제비뽑는 방법으로 잡아 내겠다. 그랬더니 모두가 내가 농담을 하는 줄로 착각하고 대수롭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같았다. 21세기 과학만능의 시대를 맞이한 이때에 아무리 군대 이긴하지만 박하사가 시대에 뒤떨어진 말도 되지 않는 말을 하고 있나 보다 라고 비웃는 듯하였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말씀인 성경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인 것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다.

구약성경 여호수아 7장에 보면 요단강을 건너서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전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은 요단강 건너 첫번째로 점령하는 성이므로 첫것은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하는 대원칙하에 그곳에 있는 모든 물건은 모두 다 하나님의 것으로 성물로 구별하셨다.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성물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금지 명령을 내리셨다. 그런데 유다 족속에 속한 사람중에 아간이라고 하는 사람이 여리고 성을 들어가서 보니 바산의 외투와 금덩어리와 은덩어리를 보는 순간 탐심이 나서 몰내 훔쳐다가 장막 밑에 감춰 놓았다.

이와같은 사실을 아무도 모른체 작은성 아이 성 전투에서 의외로 패배한 여호수아가 그 원인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나의 것을 도둑질한 자가 있다. 그를 잡아내서 처단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12지파의 족장들을 나오게 하여 제비를 뽑은 결과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오게 하였더니 유다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다."(수7:16~18)하였다.

나는 그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 부대의 도둑질하는 사병을 제비 뽑아서 잡아야 하겠다는 기묘한 생각을 한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때를 위하여 그러한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리하여 10일 동안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말씀도 영원히 변치 않는 말씀으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의 성물을 도둑질한 아간을 제비로 뽑아서 잡아내셨듯이 저도 우리 부대의 도둑질하는 사병을 성경의 방법대로 제비뽑아서 잡아 내려고 하오니 실수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혹여 제비가 잘못뽑혀서 실수하여 타인을 도둑으로 몰면 하나님과 제가 가보시키 망신입니다. 그리고 한사람의 무고한 사병을 도둑으로 모는 명예훼숀 죄를 짖는 것이니 실수하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정한 날 10일이 되어서 저녁 점호시간에 10개 분대 만큼 10개의 제비를 만들고 그중에 하나의 제비에는 도득을 상징하는 쥐형상을 그려 놓고 10개의 제비를 철모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무반에 모인 각분대의 분대장들로 하여금 앞으로 나오게 하여 제비를 뽑게하였다. 그랬더니 아무리 군대이지만 박하사가 생사람 잡으면 어떻게 하려고 저런 무모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생각과 의혹들을 품고 마지못하여 복종하였다. 사병들의 경우 내가 제비뽑는 것을 요행이나 사행이나 복불복 정도로 이해하고 오늘 재수없는 분대의 재수없는 놈(사병)이 도득으로 제비 뽑히겠구나 하는 의심의 눈초리들로 점호에 참석하여 제비를 뽑는 광경들을 지켜보고있었다.

그런데 도둑을 상징하는 쥐를 그려놓은 제비를 수송부 분대장이 뽑았다, 그 순간 내무반 장내가 마치 찬물을 끼워 놓은 것처럼 조용해 졌다. 야 ! 신기하다.  이상하다. 무엇이 있나 보다 ? 10개의 제비가운데 도둑질하는 사병이 있는 수송부 분대장이 제비를 뽑는 것을 목격하고는 참으로 이상하다. 놀랍다 라는 눈초리들을 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와같은 상황을 직시하면서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성경의 진리는 영원히 변치않는 진리이다. 라는 사실은 다시 한번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둑으로 제비뽑힌 사병은 회개하기는 커녕 완강히 거부하면서 군대 용어로 닭잡아 먹고는 오라 발을 내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제비가 잘못 뽑혀서 생사람을 잡은 것 아닌가 싶은 생각과  염려가 들었다. 그리하여 같은 수송부의 맹용진 일병에게 물어 보았다. 뱅용진 일병 너는 양심이 맑은 사병이다. 내가 네게 묻겠다. 제비뽑은 결과가 나왔는데 저가 나는 도둑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잡아 떼고 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

네가 아니라고 증언한다면 제비가 잘못 뽑힌 것으로 알고 내가 사과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맞다고 증언한다면 제비가 제대로 뽑힌 것으로 믿겠다. 라고 맹용진 일병의 양심에 호소를 하였다. 그랬더니 맹용진 일병이 양심 고백하기를 박하사님 맞습니다. 김일병이 도둑질을 하였습니다. 가끔 포초소에 나가서 함께 근무를 할 때면 김일병이 건빵도 주고 라면도 주어서 함께 먹었습니다. 야 ! 너 이것 어디서 낫냐고 물으면 야 ! 잔소리 말고 먹기나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군대 복무 중에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를 적용하여 도둑질하는 사병을 잡아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로하여금 성경의 방법대로 제비 뽑기 적용을 통하여 오늘날도 도둑을 잡아 내도록 나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표징을 주셔서 더욱 확신을 갖도록 하신 것이다. 할렐루야 !

< 주후1988년도 제1차 안식년과 갈릴리제1장로교회 창립이야기 >

주후1992년도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심하게 책망하셨다. 너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내가 네게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 사역과 선거제도를 재발견하게 해주었는 데 어찌하여 너만 홀로 적용하고 있느냐 ? 너는 마치 한달란트 받은 종처럼 땅에 깊이 묻어주고 있는냐 ? 이제는 전하라 !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 !  그때는 국가적으로는 주후1992년 12월17일에 제14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기 전이었다. 그런가하면 주후1992년도는 이장림이라고 하는 영적인 소경이며 거짓선지자가 나와서 10월30일날 성도들이 공중으로 휴거한다고 미혹하여 교계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 오직 제비 뽑아 나누라고 외칠 경우 또 하나의 이단이 나왔다고 오해를 받을 것이 염려가 되어 망서리고 있었다. 그런데 주후1992년도 1월 신앙계에 주후1992년도 대선과 구약의 제비뽑기에 대한 기독교 유명 소설 작가 김성일 장로님의 글이 실린 것을 보앗다. 김성일 장로님의 말씀은 교회의 임직자들을 비롯한 국가의 대통령까지라도 제비 뽑아서 세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라고 하는 요지로 글을 쓰셨다.




도성 (道聲) 박광재 목사 그는 과연 열방의 선지자인가 ?
도성 (道聲) 박광재 목사 그는 과연 열방의 선지자인가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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