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기후퇴로 갑을 관계가 바뀌기도
서로 눈치보며 계산 미뤄
회사 사정 좋은 '갑'이 밥 값 내기도
신용카드 제비뽑기 문화도 생겨
입력 : 2009.02.11 15:51 / 수정 : 2009.02.11 16:40
[이데일리 피용익기자] 지난 월요일 저녁, 영화 `10일 안에 남자 친구에게 차이는 법`의 감독인 크리스틴 피터스는 동료 감독과 한 여배우와 함께 베벌리힐스호텔 폴로라운지에서 식사를 했다. 영화 제작 여부를 검토하는 자리였다. 식사값은 약 100달러가 나왔다. 그러나 셋 중 누구도 밥값을 내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은 마지막에 피터스가 내고 말았다.
과거 미국 식당에서는 법인카드를 서로 내밀며 식사값을 계산하려는 승강이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 위기로 인해 기업들이 비용 절감에 나서면서 이러한 문화는 사라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업무를 위해 만난 식사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달콤한 디저트 대신 차가운 요금 명세서를 바라보며 계산을 미루기가 일쑤라고 신문은 전했다.
타임워너 출판사업부문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래리 커쉬바움은 과거 출판기획사 관계자들을 만나면 고급 레스토랑 마이클스앤패트룬에 데려가 기꺼이 법인카드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가 최근 출판기획사를 차린 후 상황은 바뀌었다. 요즘 그가 출판사 관계자들을 만나는 곳은 치즈 샌드위치 1개 가격이 8.95달러인 저렴한 식당이다. 그나마도 각자 밥값을 지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그는 한 유명 출판사가 점심을 사겠다는 연락을 받고 기쁜 마음에 뛰어나갔지만, 약속 장소는 맥도날드였다.
신문은 기업들의 식사 문화가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를 기준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밥값을 계산하는 것은 자신의 회사가 더 나은 재무제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과거 `갑`과 `을`의 관계에 따라 식사값을 내던 것과는 달라진 문화다.
영화 프로모션 컨설턴트인 테리 프레스는 "(모두 밥값 내기를 꺼려하는 가운데) 밥값을 내가 낼 수 있다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 애널리스트는 실직한 동료 직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취직 자리에 대해 조언을 듣고 싶으니 점심을 먹자는 것이었다. 이 경우 부탁을 하는 사람이 식사값을 지불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밥값은 애널리스트가 냈다.
그는 "실직한 동료의 처지가 딱해 내가 돈을 냈다"며 "게다가 밥값은 40달러밖에 안 나왔다"고 말했다.
기업 홍보 임원들도 고민에 빠졌다. 기자들은 기업 관계자들과 식사를 할 때 각자 돈을 내지만, 요즘에는 사정이 어려운 언론사가 많아 밥을 먹자고 얘기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버라이즌커뮤니케이션의 홍보 임원인 피터 토니스는 "점심을 먹자고 하려니 기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딱딱한 미팅만 갖자니 기자들과의 관계가 멀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결국 그가 생각해낸 방법은 기자들에게 점심 대신 커피를 마시자고 하는 것. 커피 값은 10달러 미만이어서 서로에게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제비뽑기`라는 새로운 문화도 생겨났다. 식사를 같이 한 사람들이 각자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테이블에 모은 후 그 중 하나를 제비뽑기해서 밥값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yoniki@ ▶피용익기자의 다른 기사/칼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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