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 : 2008.01.13 20:14:32
[백화종 칼럼] “제 아들을 천거합니다.”
전국시대 진(晉)나라의 도공(悼公) 때 중군위 벼슬을 하던 기해(祁奚)라는 사람이 나이 들어 물러나게 됐다. 후임자 천거를 의뢰받은 그는 원한이 있던 해호(解狐)라는 사람을 추천했다. 도공이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능력 있는 사람이면 됐지 저와의 개인적 관계는 천거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는 게 기해의 답이었다. 해호가 취임 전 죽었다. 다시 천거를 의뢰받은 기해는 자기 아들 기오(祁午)를 추천했다. 도공이 그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기해가 대답했다. “기준은 적임자 여부이지 내 아들이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사기(史記) 진세가(晉世家)에 나오는 ‘인재를 천거할 때 밖으로는 원수라 하여 꺼리지 않고, 안으로는 친인척이라 하여 꺼리지 않는다(외거불피구 내거불피친 外擧不避仇 內擧不避親)’의 유래다.
새로 출범할 이명박 정부의 인사를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대통령직인수위의 구성만을 놓고도 이 당선인과의 학연 지연 심지어 종교적 인연까지가 들먹여진다. 이 당선인이 나온 고려대와 그가 출석하는 소망교회를 묶어 신KS인맥이라는 조어도 유행한다. 호남 출신인 김효석 대통합민주신당 원내대표는 지난주 이 당선인에게 “인수위에 호남 사람들이 별로 없더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 당선인은 “지역에 관한 편견은 전혀 없다”며 “내 뒤의 실세는 거의 호남 사람”이라고 답변했다.
인수위의 인적 구성을 보면 세간의 말들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다. 면면들에 대선의 논공행상이나 당선인과의 개인적 인연이 작용한 흔적이 없지 않다. 이를 놓고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국민은 정권을 맡겼으면 새 집권자가 뜻 맞는 사람들로 정부를 구성하여 국정을 소신껏 운영할 수 있도록 재량을 줘야 한다는 게 평소의 지론이다. 특히 새 정권이 출범하면서 스타팅멤버를 선발하는 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결정적 하자가 있는 사람을 중용하지 않는 한 집권자의 인사권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국정 철학과 이념을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과 한 배를 타라는 건 여러 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이질적인 사람들을 현직(顯職)에 앉히는 건 출세 지상주의자들을 득세케 할 뿐이다. 예컨대 그걸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위적으로 지역 간 또는 학교 간 균형을 맞춘답시고 함량 미달의 인사를 요직에 앉힌다면 어찌 되겠는가.
또 새 집권자가 팀을 짜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데려오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 호흡을 맞춰봤던 사람들을 많이 기용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그리고 논공행상 시비와 관련하여서도 속된 말로 어부가 아들에게 생선 한 점 더 먹인다 해서 크게 탓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집권자는 아들을 국무총리에 앉혀도 좋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양심에 비추어 하등 거리낄 게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가 적재적소라고 판단되면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는 사람이 됐든 아들이 됐든 그를 요직에 천거하는 데 구애받지 않았던 기해가 그랬듯이 말이다.
집권자는 또 그러한 재량을 갖고 인사를 하고 정부를 구성했으면 국정의 결과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선택한 인물에 대해서 어디에 내 놓아도 떳떳하고 능력을 인정받을 만큼 완벽한지 철저한 검증을 해야 할 것이다. 또 그러한 인물을 물색하는 데는 시각을 자신의 주변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더 높이 떠서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집권자가 간과해선 절대 안 될 점은 지구 상에 정치라는 게 있은 이래 인사가 반대 세력을 줄이고 내 편을 늘리는 가장 효율적 통치 수단이었다는 사실이다.
백화종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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