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예장총회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2004년 05월 11일 (화) 12:00:00 [조회수 : 4] 기독신문
금년은 한국이 기독교(개신교)의 깃발을 올린 지 꼭 120년을 맞는 해다. 장로교는 평양에 신학교를 세우고(1901), 조선노회를 만들어 7인의 한인목사를 안수했으며(1907), 조선 예수교 장로회 총회로 출범하였다(1912). 예장 총회는 일제 강점기에 교회, 교육, 사회복지 및 계몽, 국권회복운동 등에서 한국사회의 지주 역할을 단단히 해냈다. 그러나 일제가 동방요배와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총회는 부끄럽게도 굴복했다(1938).
아름다운 출발, 그러나 가슴아픈 분열의 역사
1945년 광복을 맞은 예장 총회는 신사참배와 자유주의신학 문제를 놓고 진통을 거듭하다가 고신측(1952)과 한신측(1953)의 분열을 낳는다. 또 1959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관계 문제로 다시 통합측의 분열이 있었다. 그후 대신총회의 분립과(1961) 호헌총회의 분립(1963)이 뒤를 잇는다. 참으로 가슴 아픈 역사다.
1959년부터 1971년까지 예장 총회는 ‘신학적 총회’의 모습을 보였다. 총회의 제반 역량을 신학의 파수에 쏟았다. 보수정통신학을 고수한 박형용 교수가 그 중심에 서 있었고, 고신에서 온 박윤선 이상근 교수와 간하배 미 선교사가 보수개혁주의의 색채를 더 짙게 칠했다. 이 무렵 최의원 김의환 박아론 김득룡 교수 같은 한국인 2세대 교수들의 가담이 있었다. 총회는 이환수 박찬목 정규오 노진현 목사 등이 리더십의 핵을 이루었다.
이 시기 총회의 두드러진 역사는 사당동 캠퍼스 조성이었다. 백남조 장로가 내놓은 사당동 부지 위에 미 개혁파총회의 헌금으로 교사를 지었으나 1971년에 이르기까지 겨우 거푸집을 떼어낸 정도로 교육환경이 열악했다. 그런데다 은밀히 사당동캠퍼스를 팔고 남한산성 근처로 옮기려는 음모가 발각되자 학생들이 들고나섰고, 끝내 총회 리더십 교체를 초래하였다. 그 와중에 총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박형용 교수가 은퇴하고 김희보 목사가 학장에 앉았다.
‘신학 총회’에서 ‘정치 총회’ 시대로
이제 총회의 리더십은 김윤찬 이영수 목사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나 구 리더십의 만만치 않은 저항으로 갈등이 계속되더니 총회는 또 다시 분열한다. 합동개혁측(1979)과 합동보수측(1981)이 생겨났다. 이후 총회정치에서 총신은 전 시대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정치 총회’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이다.
제1기의 ‘신학 총회’가 보수개혁주의신학을 확고히 정립하는데 공헌했다면 제2기 리더십은 총회의 실제적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총신대의 사당동 캠퍼스를 확충하고 양지 캠퍼스를 새로 조성했으며, 총회 본부 빌딩 장만의 초석을 놓았다.
또 한국교회의 찬송가를 ‘통일찬송가’로 일원화했다. 누가 봐도 선 굵은 정치요 예측 가능한 정치였으나 경직된 보스체제로 말미암아 갈수록 교권의 폐해가 심해졌고, 총회 봉사에 특정 지역의 편중화로 교단 화합에 찬물을 끼얹었다.
1985년에 들어선 이른바 ‘정화파 총회’는 문제 많은 교권의 축을 무너뜨렸다는 데는 평가의 여지가 있으나 기실 ‘야합 총회’였다. 제1기 리더십처럼 신학 노선이 같은 것도 아니었고, 제2기 리더십같이 동일한 정치 노선을 지향한 것도 아니었다. 오직 특정인의 타도에 힘을 합친 것이었다. 무리한 교권은 비단 예장 총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교단에도 있을 수 있고, 나아가 타종교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것을 뒤엎자는 데 힘을 보태는 일은 보편윤리적 성찰로도 충분하다.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노선이나 방향이 고려되지 않은 리더십은 불안한 리더십이다. 불온한 세력을 타개한 후 혼돈이 뒤따른 사례가 얼마나 많았던가.
‘야합 총회’의 신학실종과 막후 세력의 준동
아니나 다를까 현실은, 알미니안주의를 내심에 감춰둔 어떤 목사와 신학에 무지한 어느 장로가 그 리더십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정의와 효율을 각각 내세웠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고 있었다.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이 그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그들은 예장 총회의 지도자로서 결격대상이었는데 실상은 지도자 중 지도자였다. 분명히 그것은 총회의 비극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시 그 점에서 총회가 얼마나 위태로움에 직면해 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직 그 결과가 가시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타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정화파 안에도 보수신학이나 개혁주의에 대해 상당한 이해와 애정을 가진 인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자기네 동료 가운데 발톱을 감춘 알미니안주의자가 끼어 있다는 사실을 어찌 알았으랴. 또 정치 자금 줄을 신학무지를 빙자하여 제켜놓을 수는 없었으리라.
그렇게 하여 교단의 보수개혁주의신학이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그 결과는 그들이 단행한 총회 내 각 기관 및 부서의 인사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그들이 주요 자리에 갔다 앉힌 사람들이 한결같이 신학노선에 무관심한 사실을 보라. 그보다 더 큰 재앙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그 위에 엎친 데 겹친 격으로 1990년대에 이르러 막후정치가 등장하였다. 정화파의 후광을 엎은 모 기관의 실무인사가 처음에는 총회의 몇몇 지도자들을 보좌하는 것 같더니 얼마 안 가 그들을 좌지우지하는 막후실세로 부상했다.
총회를 오래 드나든 사람들조차 모르게 베일을 쓴 채 어떤 때는 기묘한 계책을, 어떤 때는 요란한 포퓰리즘을 구사하면서 총회를 떡주무르듯 한다. 막후세력이란 본래 역사에 커다란 폐해를 끼치는 부정적이요 정통성 없는 파워실체다. 그러므로 막후세력이 활개 치는 곳에서는 공론이나 열린 리더십이 먹히지 않는다.
예장 총회는 이제 신학 실종의 리더십이나 막후세력준동의 리더십을 극복하고 한국기독교의 주역으로 설 것인지 아니면 구태에 젖어 낙후의 길을 걸을 것인지 선택해야 할 때를 맞이했다. 명 지휘자는 아무리 사위가 소란스러워도 불협화음과 화음을 정확히 구별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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