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품 선거 뒤에 ‘봉투 문화’ 있다
대표회장의 거액 후원금 납부·행사 참석자 교통비 지급 등 일반화…“근본 개혁 없인 재발 불가피”
[1114호] 2011년 02월 23일 (수) 이석 ls@sisapress.com
▲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최근 회장 선거를 둘러싼 논란으로 이목을 끌었다.
ⓒ시사저널 윤성호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를 앞둔 지난해 10월24일. 개신교계 한 신문의 1면에는 ‘한기총을 사랑하는 실행위원 일동’ 명의로 광고가 실렸다. 당시 임기를 두 달 정도 남겨놓은 상태였던 대표회장 이광선 목사에게 선거 공약을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이목사는 지난 2009년 12월 선거를 앞두고 실행위원들에게 ‘부부 동반 성지 순례’를 공약했다. 이 공약이 대표회장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목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한기총을 포함한 각 교단의 실행위원 수는 2백명에 육박한다. 성지 순례 비용이 1인당 2백50만원 정도라는 것을 감안할 때 10억원가량의 경비가 소요된다. 이행 여부를 떠나 이목사는 거액의 선거 비용을 공개적으로 약속한 셈이 된다. 황당한 광고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광고는 “동조 세력인 50명의 실행위원 부부만 데리고 해외여행을 하려 한다는 루머가 있다. 사실이라면 선거법 위반임을 확실히 밝혀둔다”라고 지적했다. 이목사를 상대로 촉구한 선거 공약 이행이 불법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았다.
“개혁의 주체는 제3 세력이 되어야”
전임 대표회장이었던 엄신형 목사 때는 10억원의 후원금 문제가 ‘입방아’에 올랐다. 한기총 대표회장에 당선되면 거액의 후원금을 내야 한다. 한기총 정관에도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엄목사는 10억원의 후원금을 약속했지만, 임기 막판까지도 후원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그러자 한기총이 공개적으로 후원금 납부를 종용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기자가 최근 만난 한 개신교 언론인은 “(선거와 관련해 열리는) 웬만한 교계 행사에서는 주최측에서 참석한 목사 등에게 교통비 명목으로 20만~30만원씩 챙겨주는 문화가 일반화되어 있다. 일반 선거였다면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안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언론인은 이러한 ‘봉투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금품 선거가 재현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교계에서는 금품 선거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기총 임원들을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금권 선거의 이해 당사자여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경석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는 “비대위의 기자회견으로 불이 댕겨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혁의 주체는 제3의 세력이 되어야 한다. 조만간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기총 및 개신교의 개혁이 본격화될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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