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 : 2007.11.30 18:12:22
[지혜의 아침―신국원] 가장 현명한 선택
만화를 보면 갈림길에 선 나그네가 손바닥에 침을 뱉고 튀겨 갈 길을 정하는 장면이 가끔 나온다. 길은 가야 하는데 마음을 못 정할 때 마지막으로 쓰는 방법이다. 지나친 비유일지 몰라도 이번 대선 투표를 그렇게 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더구나 같은 상황이 투표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짜증까지 난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이상주의에 물들거나 정치란 몹쓸 것이라는 비관론에 젖어서가 아니다. 이번에는 잠시나마 선거운동에 자원봉사로 돕고 싶은 후보가 있었다. 그런데 점점 실망해 아무도 찍고 싶지 않아졌다. 경선이 끝난 뒤 오히려 출마자가 늘어난 것이 결정적이었다. 저마다 앞선 후보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처럼 보여 대안으로 나왔다는데 어느 누구도 크게 나아 보이질 않는다. 둘 중 하나를 택하는 OX 문제도 어려운데 고만고만한 열 둘 중 하나를 찍으려니 머리가 아플 뿐이다. 우리 사회엔 정말 반듯한 사람이 없는 것인지 한탄스럽다.
게다가 서로를 헐뜯는 모습은 정말 실망스럽다. 외국 농담에 돈을 안 들이고 자신의 족보를 속속들이 알려면 대통령에 출마하라는 말이 있다. 그런 서구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수용해서인지, 상대 약점을 들쑤셔 네거티브로 치닫는 일이 체질이 되어 버렸는지, 지난 대선이 그랬고 이번엔 더 그렇다. 이런 탓에 올 대선은 가장 재미 없고 참여가 저조하리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민의 적극적 정치 참여는 민주주의 근간이며 투표는 권리이자 의무다. 정치적 무관심은 정치 퇴보의 근본 원인이므로 불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침을 튀겨서라도 결정해야 할 판이면 옛날 이스라엘처럼 제비를 뽑아 결정한 뒤 투표하러 가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제비뽑는 것과 침을 튀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불가피한 선택을 할 때 우림과 둠밈이라는 흑백의 돌을 주머니 속에 던졌다 뽑는 방식으로 하나님 뜻을 물었다. 거기에는 사람이 제비를 뽑아도 일을 결정하는 것은 그분이라는 신앙과 그의 주권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다. 그래서 우연에 운명을 맡기거나 점치는 것과 다르다.
이스라엘의 제비뽑기는 무지의 선택도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단지 행동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옛 이스라엘인들은 정치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공의와 정의 실현이라고 분명히 알고 있었다. 미국의 한 학자는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도 같다고 했다. 역사상 가장 풍요한 오늘날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불평등이 심화되는 불의가 편만해 평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새겨볼 이야기다. 선택이 힘들수록 누가 우리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현실성 있게 실현할 정책을 내놓는가를 똑바로 살펴야 한다. 또 누가 공약을 지킬 신뢰성과 능력을 보다 많이 보여주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념이나 신앙도 따지고, 인품을 살피는 일도 중요하지만 결국 분명한 하나님의 뜻인 공의와 평화 실현에 기여할 인물인지 아닌지를 놓고 판단해야 한다. 특히 연고를 따르거나 내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의와 평화라는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여 던지는 표가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신국원(총신대 교수·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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