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했으면 제비뽑기
한국교회가 올해도 어김없이 선거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교회가 임원 선거제도를 국가의 민주방식에 따라 채용했지만 실상 치러지는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의 임원선거를 보면 선거관리와 제도운영은 오히려 국가나 사회제도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치러진 총회의 가장 주요 관심사는 누가 뭐래도 임원선거에 맞춰져 있다. 임원선거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금권·타락은 그림자처럼 후보자들을 따라 다닌다. 목회와 전도에만 전념했던 목회자들은 한결같이 임원선거를 치르면서 ‘부끄러운 자화상’과 금권과 타락으로 얼룩진 ‘멍에’를 훈장처럼 달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오히려 식상하게 들릴 정도다.
사태가 이 정도에 이르자 한국교회는 임원선거에 있어 전격적으로 제비뽑기(추천제)를 실시하자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동안 금권·타락 선거를 보다 못한 일부 양심있는 노회와 총대들까지 가세해 급기야 제비뽑기 임원 선출 개선안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이 제비뽑기를 전격 도입해 시행했다. 제비뽑기는 이제 일부 전문가들과 각 교단 관계자들이 금권·타락선거를 막을 유일한 대안으로 검토할 정도로 임원선출의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는 2000년도에 전주노회가 제비뽑기를 헌의하여 총회가 1년간 연구하면서 동시에 서울·평양·강원동 등 3개노회도 다시 제비뽑기를 헌의했다. 비록 지난해 열린 제86차 총회에서 100여표 부족으로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점차 금권·타락 선거를 막을 대안처럼 떠올랐다.
그러다가 지난 13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끝난 제87차 예장통합 총회에서 서울노회 등 3개 노회가 상정한 제비뽑기 선거제도 헌의안을 정치부에서 통과시켰다. 구체적인 시행세칙에 대해서는 총회 규칙부가 1년간 연구해 내년 총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따라서 내년 총회에서 시행세칙안이 통과된다면 제비뽑기제는 빠르면 2004년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그러나 예장통합 내부에서도 제비뽑기에 대한 찬반 양론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앞으로 시행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예장합동 총회에 이어 통합총회가 제비뽑기제를 결의함에 따라 다른 주요 장로 교단에도 제비뽑기제도는 금권선거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해졌다.
제비뽑기가 성경적인 방법이므로 이 방법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고 제비뽑기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총대들에게 부적합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우리는 가장 성서적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면 임원선거를 어떻게 치렀을까?”라는 평범한 질문에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금권·타락선거의 문제는 법과 제도가 미비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선거 브로커들만을 탓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주는 것이 아름답다”는 미덕을 잘못 받아들여 이것을 관행과 부정에 연결시켜 받아들인 우리 사회의 그릇된 유교적 전통도 한몫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지금처럼 투표인단인 총대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피선거권자들만을 위한 제비뽑기는 그 의미가 없어 보인다. 금권·타락 선거의 폐해가 얼마나 컸으면 제비뽑기가 유일한 대안처럼 들리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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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뽑기 선거를 환영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