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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번 : 제비뽑기 민주주의
글쓴이: 진혁 (novembreournature.org)
등록: 2002년 11월 20일 11시 11분 읽음: 797
핵발전의 문제이건, 불소화 찬반의 문제이건, 다양한 우리 사회의 문제가
결국은 근본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생각이 자꾸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종철 선생님께서 지난 번 모심과살림연구소 강연 뒤에
유영희라는 분과 오간 글에서 스스로 굳이 어떤 주의를 택한다면 "근원적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에 호감이 간다고 하셨는데...
그 의미가 저에게도 좀 전해오는 것 같습니다.
지난 녹색평론 더글러스 러미스의 글에서의 제비뽑기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군요. 제비뽑기 민주주의하려면 갖추어야할
아름다운 조건들이 머리속에서 그려지는군요.
이번에 책으로 나온 이필렬 선생님의 글에 따르면 길게 봐야 2008년이면
석유생산량이 최고에 달하고 그 다음부터는 생산량이 계속 줄어든 답니다.
이미 이 이론은 미국의 석유 생산에 적용되어 정확하게 들어맞기도 했고,
뭐 그게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더이상
새롭게 발견될 유전도 별로 없는데다가 석유가 갇혀있는 지층의 압력이
낮아지면 땅밑에 석유가 있어도 엄청난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는 뽑아쓸
수 없는 상황이 곧 도래한다는 것이지요.
생각보다 바로 앞에 그런 상황이 급박하게 벌어진다 생각하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자꾸 무언가를 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석유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보세요. 곧 온답니다.
회사에서 몇몇 사람들과 이런 얘기를 해보니,
"무언가 해결책이 있겠지", "핵발전", "핵융합" 운운하다가,
주로 과학, 공학에 대한 감이 있는 사람들이라 다들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나서, 다들 "정말 큰 일이네" 그러면서도 심각하게
자기에게 당면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네요.
석유만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석유가 완전 고갈되기 전까지 벌어질 전쟁, 생각만해도 끔찍하군요.
제비뽑기 민주주의가 가능한 세상으로 나아가면 되겠지만,
왠지 인류는 어리석은 길로 갈 것만 같습니다. 어떻하면 좋지요?
아래는 한겨레 신문 아침햇발에 실린 기사입니다. 10월 3일자...
지난호 녹색평론에 실린 더글러스 러미스의 글이 언급이 되어서
그냥 한번 옮겨봅니다.
*****
민주주의? 귀족주의?
얼마 전 치러진 독일 총선에 관한 기사들 중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살 소녀 국회의원이 탄생했다는 이야기였다. 안나 뤼어만이라는 기사의 주인공은 프랑크푸르트의 호프하임 지역구에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다. 4위를 차지해 지역구 의원이 되는 데는 실패했으나,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 포함돼 독일 연방 하원의원이 된 것이다. 우리로선 이해가 잘 안 되는 일이다. 녹색당은 왜 안나를 지역구에 공천하고, 다시 비례대표 명단에 넣어 굳이 19살 짜리 국회의원을 만들었을까. 녹색당은 본래 별난 사람들이니까, 그냥 별난 짓을 한 걸까.
독일녹색당의 19세 연방의원
<녹색평론>에 실린 정치학자 더글러스 러미스의 ‘무력감을 느끼면 민주주의는 아니다’라는 글을 읽다가 그 해답을 찾았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시작된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선거로 대표를 뽑는 것을 민주주의로 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그는 그것을 ‘귀족주의’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선거를 하면, 학식 높은 사람, 돈 많은 사람,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뽑힐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뽑힌 대표들이 하는 정치는 다름 아닌 귀족정치라는 것이다. 그들이 대다수 일반 국민이 아니라, 자신들이 속한 ‘귀족’의 이해를 우선적으로 대변하는 것 또한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정치란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 하곤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라고, 대부분의 일반 국민이 무력감을 느낀다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이 러미스 글의 요지다.
그러면 그리스 사람들은 어떻게 대표를 뽑았을까. 나도 깜짝 놀랐다. 제비뽑기로 했다는 것이다. 제비뽑기를 하면, 누구라도 뽑힐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대표가 될 준비를 하므로써 참여의식이 생기고, 한 사람이 여러번 뽑힐 일이 없기 때문에 장기집권에 의한 타락의 염려가 없고, 또 특히 잘나서 뽑힌 것이 아니니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녹색당이 19살 짜리 연방의원을 탄생시킨 것은 바로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국민의 대표가 되는데 특별히 학력이 높거나, 나이가 많거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 말이다. 독일 녹색당은 초기에는 당수도 따로 없고, 자기네 당이 확보한 비례대표 의원직을 당원들이 돌아가면서 수행하기도 했다.
무력감 느끼면 민주주의 아니다
그러므로 국회의원을, 대통령을 제비뽑기로 정하자고 할 용기까지는 없다. 그러나, 이 정치의 계절에, 정치는, 더구나 민주주의라면, 힘 있고 잘난 사람들끼리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귀족’들이, 요즘 말로는 ‘파워 엘리트’라 할까, 워낙 막강하게 정치권력을 틀어 쥐고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전력을 다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유식하고 힘있는 ‘전문 정치꾼’들이 보통사람도 차마 부끄러워 못할 거짓말과 치사한 진흙탕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만, 대다수 언론들은 그것이 대단한 정치인양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그래서 정치혐오증이 극에 달해 있지만, 나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는 대다수 시민들의 ‘상식’이 소수 귀족들의 ‘비상식’을 압도하는 몇몇 신선한 사건들을 경험했다. 지난 봄, 정치권 내부의 기존 판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끌어 낸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은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예로 두번에 걸친 총리 지명자 인준 부결을 꼽고 싶다. 장상씨가 총리에 지명된 후, 아들 국적, 부동산 투기 등의 문제가 터져 나왔지만, 막상 인준이 부결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이른바 전문가들 중에 거의 없었다. 그만한 신분의 ‘귀족’들에게 그런 일들은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에게 그들의 특권은 엄청난 배반감을 안겨 주었고, 정치권은 재빨리 여론에 굴복했다.
온국민을 행복하게 했던 월드컵 거리응원은 정치색을 띠지 않았지만, 다수 국민의 엄청난 힘, 세련된 성숙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누가 우리 국민을 미숙하다고, 힘이 없다고 할 것인가. 사회 발전의 중요한 고비가 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국민이 어떤 정치력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지영선 논설위원 ys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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