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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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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 재발견 55주년이 되었다.
내가 청소년 시절 신구약 성경을 애독하던 중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 사역과 선거제도를 재발견한 때는 주후1966년 경이다. 지금도 신림동에 있는 왕성교회(담임 길요나 목사, 원로목사 길자연)의 전신인 봉신제일교회를 개척하신 분은 이무호 목사님이시다. 봉신제일교회는 지금은 고인이되셔서 천국에 계시는 이무호 목사님을 모시고 나의 부친 박리남 장로님을 비롯한 소수의 성도들이 닭장에서부터 개척한 교회이다.

모 권사님께서 닭장으로 사용하던 사육장을 임시예배처소로 제공하셨다. 교회 개척 초기에는 그곳에 가마니를 깔고 호롱불 등잔을 키고 산소통을 걸어 놓고 예배시간을 알리는 종을 치는 개척교회였다. 아마도 봉신제일교회는 출옥성도들이 세운 재건교회와 더불어 신림동에 세워진 최초의 장로교회였다. 그 당시 신림동은 서울의 후암동 남산 기슭에서 살다가 남산을 재개발하는 정부의 정책에 의하여 쫒기다 싶이 강제적으로 신림동으로 이주 당한 100여 세대의 난민들이 최초의 이주민들로 살고 있었다. 지금은 신림동에 서울대학 캠퍼스가 들어와서 어느 도시 못지 않는 큰 도시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강제적으로 이주당한 55년 전의 신림동은 그야말로 황량한 들판과 관악산 밑자락에 위치한 빈민 동네였다.

그런데 이무호 목사님께서는 선견지명이 계셨다. 장차 신림동이 개발될 것을 아시고 그곳에 들어오셔서 봉신제일교회를 비롯하여 제7교회에 이르기까지 초교파적으로 일곱교회를 개척하셨다. 그 당시 힌국장로교회가 사분오열된 모습을 안타깝게 어기신 이무호 목사님께서는 언젠가 한국장로교회가 하나로 합쳐지면 그때 가서 장로교회에 가입할 것을 목표로 소아시아에 있었던 일곱교회처럼 초교파적으로 일곱교회를 개척하셨다. 이무호 목사님의 가족들은 대림동에 살고 계셨다. 그리고 이목사님은 혼자 신림동으로 들오셔서 봉신제일교회 뒷편 벽에 부쳐서 마련한 세네평 남짓한 임시 사택에 거쳐하시면서 교회를 돌보고 계셨다. 어느날 이목사님께서 나의 부친 박리남 장로님께 박장로님의 넷째 아들 박광재 선생을 나와 함께 지내며 교회를 돌보며 봉사하도록 허락해 주면 감사하겠다고 요청하셨다.

그 요청을 받으신 나의 아버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목사님께서 네가 교회로 들어와서 목사님과 함께 살면서 봉사하면 좋겠다고 부탁하셨다. 그러니 이목사님을 도와서 교회를 봉사하면 어떻겠느냐? 고 물어 보셨다. 그 당시는 하루에 밥 한끼도 제대로 먹기 어렵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식사는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나 칼국수를 먹던 시절이었다. 그런까닭에 이무호 목사님의 요청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서 주후1967년부터 거쳐를 봉신제일교회로 옮겨서 이무호 목사님과 교회 뒷편에 임시 마련한 사택에 함께 살면서 오늘날로 말하면 사찰노릇을 하였다. 그 당시 내가 한 일이란 날마다 새벽4시30분에 일어나서 촤임벨로 새벽종을 치는 일과 아침과 점심과 저녁에 식사를 마련하여 이목사님을 대접하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낮에는 이목사님과 함께 교회주변의 땅을 좀 더 넓게 확보하기 위하여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서 리어거에 실어서 다른곳으로 옮기는 일과 비가 올경우 성도들이 교회를 올라오는 흙벼래 계단이 허물어질 경우 계단을 다시 보수하는 일 등을 하였다. 20대의 청소년으로서는 감당하기가 힘든 일들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와가 모세를 따라 다니며 수종들듯이,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 다니며 수종들듯이, 디모데가 사도바울을 따라 다니며 수종들듯이 그리고 사무엘이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성막에서 엘리 제사장을 수종들면서 하나님께 헌신봉사한 것처럼 성전에서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한다고 하는 사실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노동과 같은 일을 하고 나면 피곤하여 잠에 골아떨어 지기가 일수였다. 그러나 새벽 종을 처야한다는 부담감에 긴장하면서 잠을 청한다. 그러면 새벽역에 '광재야' 하고 부르시는 이무호 목사님의 음성이 들렸다. 깜짝 놀라서 깨어나 목사님 저를 부르셨어요? 하고 물으면 '아니'하셨다. 나는 분명히 나를 부르시는 목사님의 음성을 듣고 깨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목사님께서는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새벽 첫종을 쳐야할 시간이었다. 아마도 내가 피곤하여 곯아 떨어져 잠자고 있는 모습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나를 깨우시기 위하여 이목사님의 음성으로 나를 깨우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한 일이 두세번 반복되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현상은 나로하여금 새벽종만을 치라고 하신 것이 아니었음을 후일에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의 콜링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기도하며 성경을 읽는 가운데 깨닭은 사실은 어린 사무엘이 대제사장 엘리를 수종들며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다가 성막에서 잠자고 있을 때 "사무엘아 ! 사무엘아 ! 부르셨던 것처럼 그때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주의 종으로 부르신 것을 깨닫게 되었다. 봉신제일교회를 섬기는 동안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신구약성경을 애독하였다. 그때 내가 성경을 애독하는 가운데 내 눈에는 유독 제비뽑기가 보였다. 그리하여 집중적으로 신구약 성경속에서 성삼위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과 선거제도인 제비뽑기를 연구하였다. 그 결과 재발견하였다. 그러니까 내가 신구약성경속에서 제비뽑기 사역과 선거제도를 재발견한 때가 이미 반세기를 넘어서 55년 전 일이다.


   55년 전 최초로 신학교 학우회장을 제비 뽑아 세우다.

박광재
2021/12/21

   대주제 : 감리교회 창설자 요한 웨슬리 선생 탄생300주년을 맞이하여 강화북지방 박원재 감리사 제비뽑아세우다.

박광재
20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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