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비 뽑기, 작성자 변종길
다음 글은 [그 말씀] 2002년 4월호에 게재된 "사도행전 1장 주해와 적용 중"에 나오는 것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제비 뽑기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베드로의 제안을 들은 제자들은 두 사람을 추천하였다(행 1:23). 한 사람은 ‘바사바’라고 하는 ‘요셉’이었는데 별명은 ‘유스도’였다. 다른 한 사람은 ‘맛디아’였다. 이 두 사람은 위의 전제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이 둘 중 누가 선출되더라도 사도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었다. 이처럼 추첨에 의해 선출할 경우에도 후보자들의 자격 기준을 정하고 엄격히 심사하여 내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추첨이라고 하여 아무나 후보로 내세우는 것은 무책임하며 인간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에 제자들이 이 두 사람을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24,25절). 기도의 내용은 이 두 사람 중에서 주께서 택하신 자가 누구인지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추첨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추첨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원하시는 사람이 선출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추첨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저 형식적으로, 하나의 순서로 기도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올바른 인도를 기대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추첨하기 전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고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다 정지작업 해 놓고서 하나님께 택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위선적이며 하나님을 우롱하는 것이다.
기도한 후에 그들이 제비를 뽑으니 맛디아가 당첨되었다(26절). 제비를 뽑는 것은 고대 사회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행하던 관습이었다(대상 26:13-16, 잠 16:33, 레 16:9,10, 욘 1:7, 느 11:1, 수 15:1, 16:1 등).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 이것은 중요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를 받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솔로몬은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였다(잠 16:33). 또한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케 하느니라.”고도 하였다(잠 18:18). 물론 여기서 다툼이 있은 것은 아니고 자격 있는 두 사람 사이에 하나님의 결정을 의뢰하는 행위였다.
그런데 제비 뽑는 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다. 고대의 문헌 중 ｢일리아드｣ 제3권에 보면, 제비들을 헬멧 안에 집어던진 후 그것들을 흔들어서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것을 택하였다고 한다(cf. Alexander, Acts, p.37).
그래서 오늘날의 학자들은 대개, 두 후보자의 이름을 나무 조각이나 가죽 헝겊 같은 것에 적어서 그것을 항아리에 넣은 다음, 그것을 흔들어서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것을 택하였다고 본다(J. Keulers, De handelingen der apostelen, 1952, Roermond en Maaseik, p.46; Polhill, Acts, p.95; Th. Zahn, Die Apostelgeschichte des Lucas, Leipzig, 1919, p.65 등).
그리고 26절의 “제비가 맛디아 위에 떨어졌다(epesen)”는 표현도 이러한 방식의 추첨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후보자 두 사람이 흔들었는지, 아니면 열 한 사도들이 흔들었는지, 아니면 사도들을 포함한 모든 제자들이 흔들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23절의 ‘추천하였다’의 주어 및 24절의 ‘말하였다’의 주어와 26절의 ‘뽑았다’의 주어가 서로 다르다고 볼 이유가 없기 때문에, 26절의 제비뽑기의 주어도 역시 ‘그들 전체’로 보는 것이 문법적으로 더 타당해 보인다(cf. F. W. Grosheide, De handelingen der apostelen, I, Amsterdam, 1942, p.42 n.1).
어쨌든 이러한 추첨 방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맛디아를 사도로 결정해 주셨다. 그리하여 유다의 이탈로 말미암은 결원은 보충되었으며 ‘열 두 사도’가 회복되었다. 그렇다면 열 두 사도의 회복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여기에는 아무래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열 두 사도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상징한다(마 19:28, 계 21:12). ‘이스라엘’이 열 두 지파로 이루어져 있듯이, 이제 시작될 ‘새 이스라엘’도 열 두 사도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했다(엡 2:20, 마 16:18). 이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열 두 사도’가 복음을 전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행 2:14).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출발하는 ‘새 이스라엘’의 시작에 ‘열 두 사도’의 역할은 참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왕상 18:30,31, 요 1:47,49 참조).
맺는 말
그리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 날에 오실 성령을 맞이할 모든 준비를 갖추었다. 3년간의 철저한 교육과 훈련, 승천 직전의 반복 학습, 전심으로 드린 기도와 열 두 사도 단체의 회복 등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었다.
이처럼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완벽한 준비를 다 갖추었을 때 약속된 성령이 임하셨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의 준비가 성령을 오시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인간의 준비 없이 성령이 오신다고 할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모든 일을 행하시되, 우리 인간 편에서의 준비를 요구하시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인간 편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잘 갖추는 것이 하나님에 의해 쓰임 받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추첨 제도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추첨 제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좋은 방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후보자 선정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나 심사 없이 무턱대고 추첨에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며 미신적이 될 수도 있다.
마치 복술가들이 점을 치듯이 타락할 위험성이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잘못 사용될 때에는 미신처럼 타락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 한국 교계에서처럼 선거열이 지나치며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시점에서는 추첨 제도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추첨 방식만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며 옳지 않다. 사도행전 14장 23절에 보면, 사도 바울과 그 동역자들은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세웠다고 한다. 여기서 ‘택하다(케이로토네오)’는 말은 원래 ‘손을 들어 투표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교회 회중들이 ‘투표로’ 장로들을 선출하였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투표에 의한 선출 방법도 교회의 직분자들을 세우는 훌륭한 방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나 교회 단체에서 직분자들을 선출할 때 ‘추첨’과 ‘투표’의 두 가지 방식을 다 사용할 수 있으며, 형편에 따라 합당한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모든 것이 정상적이며 별 문제가 없을 때에는 ‘추첨 방식’과 아울러 기도 가운데 행하는 ‘투표 방식’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을 세우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선거 운동이 과열되고 많은 부작용이 나타날 때에는 ‘추첨 방식’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적절한 기준을 정해 놓고서 엄격히 심사하여 자격 있는 후보자들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함은 앞에서 말한 바 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잘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는 인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운영하는 인간 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모인 거룩한 단체이다. 따라서 인간의 욕심을 버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며, 집단 이기주의나 붕당 정치가 지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성도들 각자의 마음을 주장하시고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뜻이 바로 나타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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