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
글쓴이: 박인식 조회수 : 14 07.11.21 14:32 http://cafe.daum.net/parkinsik/8Pef/2742
며칠 전, 오랜 산고 끝에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월성 원자력환경관리센터라는 이름으로 착공되면서 국내 원자력발전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되었습니다. 경북 경주에 들어서게 될 처분장은 전체 처리량 80만 드럼 중 1차분 10만 드럼에 대한 시설로서, 2009년 말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처분장 위치를 선정하는 문제로 이십 년 가까운 세월동안 홍역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그에 못지않게 처분장 형식을 놓고 지상에서 땅을 파고 묻는 방식으로 할 것인가, 터널을 건설해서 그 안에 묻는 방식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그에 못지않은 격론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다가 터널 방식으로 결정이 되고, 드디어 지난 9일에 첫 삽을 떴습니다.
저는 평생 원자력발전소와 지하에 대규모 터널을 굴착해서 유류를 비축하는 지하 유류 비축시설 건설 사업에 참여해왔습니다. 그런 제게 원자력시설로서 대규모 터널 방식이 적용되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사업이야 말로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기회가 아닐 수 없는 것이지요.
게다가 앞으로 십여 년 이상 계속되어야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회사로서도 꼭 수주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사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서 오래 전부터 이 사업에 가장 가까운 사업이 바로 지하비축기지임을 누누이 강조하였고, 그 의견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져서 이 경험을 바탕으로 본 사업의 수주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사업은 먼저 수행능력을 평가해서 얻은 점수와 입찰가격으로 적격업체를 선정합니다. 발주처에 힘을 다해 당위성을 입증하려 했고, 그래서 상대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만, 그래도 입찰가격에 따라 당락이 뒤집힐 여지는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정도 격차면 일반적으로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었음에도, 입찰날짜가 다가오면서 격차를 더 벌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고, 그것이 불안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입찰이 있는 날, 새벽기도의 본문이 ‘제비뽑기로 왕을 세운 기사’가 나오는 사무엘상 10장이었습니다. 제비뽑기로 지도자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일이라는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입찰에서 완벽하게 성공하기 위해 경쟁사와의 점수 격차를 더 벌리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제비뽑기가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여지를 남기는 일이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그동안 내가 가진 불안이 결국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수 있는 여지를 없애지 못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원했던 대로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을 만큼 격차를 벌렸다면, 성공하고 나서 그것이 내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교만에 빠지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교만이 마음에 자리 잡는 순간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개입하실 여지는 없어졌을 것이니, 그러고 보면 완벽하지 못한 격차가 오히려 은혜가 아니었겠습니까.
비록 수행능력평가에서 완벽하게 경쟁사를 제압하지는 못하였음에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허락하셔서 수주에 성공하였고, 아울러 교만의 함정을 한 번은 비켜갈 수 있었습니다.
살아오면서 늘 세상일에는 하나님의 몫과 사람의 몫이 있다고 생각해왔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몫을 강조하다보니 어느덧 하나님의 몫까지도 스스로 감당하려 드는 교만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여지를 봉쇄해버리려는 죄악을 범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제게 본문의 제비뽑기에 대한 기사는 때를 놓치지 않도록 지키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청년의 역할, 청년부가 감당하여야 할 몫, 청년부의 바람직한 형태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So many people, so many thought’라고, 사람이 많으니 생각이 많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생각 중에서 과연 하나님의 뜻을 먼저 헤아리는 방편이 얼마나 될까요?
교회에서 행사를 치르고 나면 대부분 후유증을 치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 후유증의 대부분이 사람의 열정으로 준비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알고 계십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실 것이라는 무사 안일한 생각으로 자신이 감당해야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람의 열정이 앞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여지마저 없애는 교만도 그에 못지않게 큰 죄악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덧 한 해가 다 지나가고 새로운 한 해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늘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모습이 아닌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가운데, 새로운 한 해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께 허락하신 젊음이라는 분복을 마음껏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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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 부탁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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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와 제비뽑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