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사랑닷컴
2004/1/4(일) 12:33
"기독교인 30%가 연루(?)", 교회 안에 침투한 점 실태 현장 르뽀
"보증 섰다가 골머리, 노점상 강제 철거-식당 시작할까 하는데, 아파트 딱지 구입 잘못 - 집단사기 당하고, 늙은 교수와 연애 - 동거하고 있어, 두통으로 죽을 지경, 말단선원 - 정부에게 일천만 원 사기, 작년부터 각 방-올해 이혼하려고, 지방의회 의원 진출, 시모와 불화 극심, 방송국 시험 보려는데, 큰아들 음주 교통사고 - 법정 시비, 1억 부도 내고 부인 가출 무소식, 지금 사귀는 남자랑 결혼해야 하나, 사업 파산 직전, 언제쯤 잘될까 해서…."
서울 신촌의 어느 점집에서 잠깐 훔쳐본 '처방록'의 갖가지 고객 진단사항들이다. 굳이 목록으로 구분하자면, 건강·애정·금전·직업·진로 등 세상살이에서 애환이 깃들 만한 것은 거의 다 들어 있다. 이 철학관의 주인은 "기독교인도 똑같은 고민거리를 가지고 찾아온다"고 말한다.
"참을성이 좀더 있다는 것 외에는 별로 다를 게 없어요. 특히 자존심이 강해 점보기 전에 이것저것 캐물어보고 말이 좀 많다 싶으면 기독교인입니다. 점괘를 보고서도 알고, 대화 끝에 실토받기도 하는데, 2년 동안 일부러 통계를 내본 바로는 손님들 중 30퍼센트는 됩니다."
마침 기독교인으로 자처하는 30대 중반의 남자가 아들의 이름을 짓기 위해 찾아와 곁에 앉아 있었다. 그는 "기독교는 종교의 의미로써 의지할 수 있다. 점은 합리적인 이론에 근거한 것이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왠지 어딘가 찜찜하고 어색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30퍼센트 군'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손님 중 30퍼센트는 기독교인"
신촌만 그런가 해서 '전통과 명성'을 자랑한다는 미아리 점촌으로 갔다. 민들레 선녀 예언가, 은하수, 봉선화, 거산도사, 거북점·육효점, 최역학, 백운산 청년예언가, 흑진주 여자 운명감정소, 새희망 명학사 철학 등의 간판을 내건 40여 개의 맹인 점집들 가운데 꽃 이름을 가진 여자 점집을 들러 "기독교인이 얼마나 찾아오느냐?"고 물어보았다.
"30퍼센트 정도 됩니다. 묻지 않아도 괜한 자존심에 자기 종교를 내세워요. 그러나 종교는 마음의 의지일 뿐 답답하면 점보러 올 수도 있지 않느냐는 태도를 많이 보입니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결혼이나 진로문제로 젊은 사람들이 부쩍 더 많이 찾아옵니다."
역학·사주에 관한 책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는 방 한 켠에 조그맣고 깜찍한 동자승 인형이 하나 놓여져 있다. 맹인이지만 눈치를 챘던지 "사주를 보면 기독교에 속하는 괘가 있고 불교에 속하는 괘가 있다"는 말로 기독교인 전체를 점 하나로 간단히 '몰아서' 짚어주기도 했다.
돌아오며 삼선교를 지나 미아리로 건너가는 고가도로 바로 옆에 자리한 점집 한 곳을 더 들렀다. 이곳서 손님을 받는 남자 맹인 역시 "기독교인이 열에 두셋은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좀 다른 말을 했다. 그는 "진짜로 믿는 신자는 안 온다. 진짜 불교 신자도 마찬가지"라고 귀띔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상하게 계속 꼬여 하는 일마다 잘 안 되고, 원인 모를 병에 걸리거나 가정파탄과 같은 큰 어려움에 처하면 진짜배기 신자도 찾아옵니다. 갈팡질팡하다 절망에 빠지면 누구라도 극도로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대개 주위의 권유에 따라 마지못해 오는 경우가 많지만 드물게는 전도사나 목사도 있습니다."
점본 대로 방술을 해서 병을 고친 어떤 목사는 그 뒤 직업을 바꾼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는 그는 "'신'으로 하지 않고 철학으로 하는 것이니 괜찮치 않느냐고 하면서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죄의식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처할수록 믿음에 의지해 극복하는 것이 참신앙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흔치 않게도 이 점술가는 기독교에 어느 정도 마음 문이 열려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시간 넘게 전도를 받았지만, "진짜로 믿게 되면 당장 먹고 살 방편이 없어진다"면서 가끔 기독교인 전도자들이 찾아와 "당신 이 짓 계속하면 지옥 간다. 예수 믿으라"고 할 때가 가장 싫다고 말했다).
'점 권하는 사회', 기독교인도 한몫
한국역술인협회가 최근 추산한 바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점집을 운영하는 역술인들은 약 30만 명에 이르며 신점을 보는 무당은 약 10만여 명쯤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이들이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조금 부풀리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점보는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해보인다. 특히 정초나 결혼 시즌인 봄·가을, 선거·입시철이 되면 세류를 따라 예외없이 점집을 찾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팔자·운수는 안 봐도 궁합은 따져야 한다"는 기독교인까지 합하면 거의 과반수가 넘는다는 일치된 보고도 있다.
원래 점은 고대 제정일치 시대에 하늘의 징조들을 살펴 국가 공동체의 장래를 예견하고 미리 대처하기 위한 공적인 통치수단이었다고 한다. 점치는 일을 주관하던 이들도 군왕급의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다가 차츰 제정이 분리되고 점이 민간에 이양되면서 무속·개인화되어 단순히 길흉화복을 따지는 도구로 전락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 유신시절, 산업화·과학화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도박이나 축첩을 없애고, 미신 타파 정책에 따라 무당·굿, 점보는 일 등을 배척하면서 어느 정도 '선진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도시 산업화에 따른 급속한 사회 변화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증가시키고, 개인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능력을 차츰 잃어가면서 오히려 미신적이고 초월적인 점과 같은 도구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연이어진 대형 사건·사고로 산업사회 성장의 많은 부분이 안전보다 부실 쪽에 더 가깝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래 예측의 어려움, 죽음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점은 좀더 본격적으로 사회 전반에 얼굴을 들이밀고 등장했다. 특히 한때 김일성의 죽음에 대한 역술가들의 예언이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이 사실이 각종 방송·언론 매체에 크게 보도되면서 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부쩍 커졌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점이 사회 요소요소에 더욱더 일반화되어가는 추세다. 은행에도 고객 서비스용으로 컴퓨터점이 개설되고, 대학에는 구통도가를 비롯, 민족 종교를 되찾는다는 명분 아래 심심찮게 점판이 벌어진다. 음력 윤 8월이 끼어 결혼이나 이사를 꺼리는 서민들 못지 않게, 정치인·사업가들이 역술가들의 말에 귀기울여 앞일을 결정하고, 그들이 지은 책들을 돌려가며 탐독한다.
대형서점마다 역학 서적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이론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 크다. 을지서적 역학 코너의 한 직원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역술 분야의 책들이 꾸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주·관상학에서부터 성명학·정감록·격암유록·수상·족상·궁합 등에 관한 책들이 골고루 팔린다"고 말했다.
점술을 소개하고 퍼뜨리는 통로는 이러한 책들뿐만 아니다. 일간 스포츠 신문들에는 거의 예외없이 '오늘의 운세'나 성명학 소개 코너가 들어차 있고, 전화음성정보로 '30초 50원'에 하루 운세가 세일되는가 하면 점만 전문으로 봐주는 카페도 생겨나고 있다.
특히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일본에서 들어온 귀신놀이라든지 볼펜점, 동전점이 유행하고 있다. 볼펜점 같은 경우에는 단순히 놀이 이상으로 '프로성'을 띤다. 한 아이가 주문을 외면 손에 쥔 볼펜이 저절로 움직이며 글을 써나간다. 그 글의 내용이 곧 '신의 말'로 대접받아 운세를 따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역술이기 이전에 거의 '신점'에 가까워 귀신들이 어린 영혼들을 틈타는 통로가 되기도 해 위험성이 크다.
물론 기독교인들이 보는 점은 신접한 무당들의 '강신점'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는 점의 종류나 진실성을 따지기 이전에 점보는 행위나 심리 그 자체가 문제된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이렇게 될 경우 민감하게 거론되는 것이 바로 기독교 안에 들어와 있는 온갖 종류의 '점스런' 행태들이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꽤나 연륜이 있다는 이른바 '가정제단'이다.
가정제단의 예언기도, 교회 안의 점
"좀 신령하다는 권사나 기도하는 분들에게 자녀 진학이나 건강 등의 문제를 놓고 '예언기도'를 부탁하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교회 밖에서 사람을 불러오기도 하지요. 특별히 해결해야 할 문제를 놓고 시간을 정해 며칠 동안 집에서 기도·예배 모임을 갖습니다. 이때 기도를 통해 그 가정에 꼭 필요한 말씀을 뽑아 전해주거나 포괄적으로 상황에 적합한 도움말을 해주는 식이지요."
서울 수유리의 한 대형교회 부목사의 말이다. 주로 심방 전도사들을 통해 가정제단에 대한 소식을 접하는데, 목회자들에게 직접 기도해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평신도들끼리 몰래 모여 모임을 갖는 것이 특색이라고 말한다. 이들 가운데는 공공연히 미아리 점촌에 다녀왔다는 말을 동료들에게 전하기도 한다고. 이 목사는 "70년대 이후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신앙과 생활의 이원화를 미처 막지 못하고, 교회 안의 무속적인 요소를 걸러내지 못한 탓"이라며 참된 양육 부재를 가정제단의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한국교회에서 가정제단은 전후 50년대부터 이전보다 좀더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초기에는 신유 은사를 겸해 예언기도 은사를 받은 부흥사 출신의 목사나 부부기도원 등을 통해 조금씩 전수되어오다가 차츰 개교회에 이러한 '사설 제단'을 꾸리는 소그룹들이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회 안에서 건전하고 지혜롭게 예언의 은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교회 밖에서 비밀리에 행해진다.
물론 가정제단이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잘못을 경고하여 개인의 회개를 촉구하고 위로하며 섬기는 데 기본 멘탈리티를 둔다면 오히려 조심스럽게 장려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속의 점쟁이들이 하는 방식과 거의 비슷하게 꾸려진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기도해준 뒤 자연스레 돈을 요구하기도 하고, "당신 이렇게 하면 잘될 것, 결혼은 몇 년에 하면 좋다"는 식의 점쟁이 흉내를 낸다. 결국 강제성이나 협박조의 명령 형태를 띠어 어떤 특정한 사실에 사람을 묶어놓는다는 면에서 점과 크게 다를 바 없게 된다. 이는 '용하다'는 예언기도자를 소문을 듣고 초청하면서부터 이미 자초된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가정제단이 이전만큼 극성스럽지는 않아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또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면에서는 가정제단을 긍정적으로 양성화해야 한다는 이들의 의견도 참조될 만하다.
"교회에서 예언 은사를 봉쇄시킨 결과라고 봅니다. 은사에 따라 교회에 직임을 세우듯 은사에 대한 이해나 지혜가 성숙하다면 문제가 안 되지만, 우리나라는 리더십 차원에서도 아직 충분히 수용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봅니다. 미국의 경우는 예언의 은사가 공개적으로 활용되어 교회와 개인의 덕을 세우는 데 건전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한국교회의 오순절운동은 은사의 균형있는 추구보다 방언 하나에만 지나친 강조점을 두어 오히려 부작용을 낳은 선례도 있지요."
충신교회의 박정관 목사는 가정제단을 통해 예언기도를 받고 시원스런 해답을 얻는 데 길들여진 신자들 가운데는 기존의 교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도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현재 교회가 평신도들이 생활 속에서 부닥뜨리는 답답함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더구나 계속 음성적으로 방치해둘 경우, 점을 예언기도와 비슷한 기독교 신앙의 일부인 것으로 여겨 귀신과 성경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뉴에이지의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박 목사의 예견이다.
혈액형 감별·지역감정도 '점적인' 사고에서
가정제단과 같은 직접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기독교인들이 별 생각 없이 '세습'에 동조하고 있는 '점적인' 사고나 인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혈액형이나 출신 지역, 성씨, 체질 등에 따라 사람의 성향을 지나치게 구분하고 그대로 고정시켜 대하는 경우 등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기준으로 이같은 성향의 근거들을 곰곰이 따져보지도 않고 세인들의 관심이나 상식을 따라 분별없이 받아들이는 데 문제점이 있다.
ABO식의 혈액형별 성격 진단법은 사실 1930년대 일본의 한 의과대학에서 지역 주민 2천여 명을 대상으로 표본 조사한 연구 결과를 통계 자료로 해서 발표된 것인데, 이 내용이 그대로 전세계에 받아들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도 교육학계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분별법이다. 'O형은 활달하고 외향적'이라거나 'A형은 섬세하고 내성적'이라는 공식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유형도 주변에서 종종 찾아진다.
그러나 이러한 '비공식'이 확실한 실제인 것처럼 오용되어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에 특정 혈액형을 가진 이들이 처음부터 제외되거나 사주식으로 '혈액형별 궁합법' 등을 보는 변태성 사례들이 적지 않다. 모두 인격적인 관계의 발전이나 가능성보다 결정론적 가치관을 심는 잘못된 요소들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지역감정의 주범 역시 풍수지리·도참설에 바탕을 둔 '땅 기운' 곧 지기(地氣) 분별법이다. 고려 개국 당시 왕건의 훈요십조에서 전라도의 지세를 '풍전세류'라 하여 그곳 사람들이 지조가 없고 배신을 잘하니 벼슬을 주지 말라고 했고, 경상도는 '태산부동'이라 하여 우직하고 지조가 있으니 벼슬을 많이 주라는 조항이 화근이 되었다.
전라도 외에도 평안도와 함경도의 지세를 안 좋게 보아 이후 역사적으로 홍경래의 난, 묘청의 난, 이괄·정여립의 난 등이 모두 이들 지역에서 일어나 민족 분열의 골을 깊게 했다. 물론 교회 안에도 일면 이러한 편견이 알게 모르게 들어와 '영적인' 활동 영역을 확보해놓고 있다.
이 밖에도 좀더 교회 안으로 좁혀보면, 위협조의 점쟁이식 설교,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으로 하나님을 도구화시키는 기도, 자신의 감정을 만족시키는 쾌락(결국 기복)의 도구로 이용되는 찬양, 성숙한 인격·열매가 뒤따르지 않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잡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를 못 누리는 것, 교회 안의 물질·성과주의 등이 모두 살아있는 관계보다 왜곡된 기복주의나 결정론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케이스에 속한다.
이쯤 되면 천지만물의 이치를 밝혀 숙명론적 세계관의 기초가 된 동양의 주역이나 풍수지리설, 사주의 정체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이들을 토대로 한 지식이 '선험적인' 인식으로 작용되어 불러일으키는 문제들은 미신이 갖는 해악 못지 않게 심각하기 때문이다. 점이 실제로 맞아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며, 기독교적으로 볼 때 단호히 "모든 점은 가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코 간단히 가려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기독교적인 해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가 아닌 것 또한 분명하다.
음양오행설, '존재자' 신앙이 없다
자연 변화의 이치를 규명하기 위해 오행설을 근간으로 삼은 주역(중국의 주나라 때 만들어진 '변화'에 관한 책)과 사주의 원리는 인간이 천지만물 변화의 이치에 순응해서 자연의 한 존재로 살아감이 좋다는 데 핵심을 둔다. 천기 변화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인간의 삶은 모든 사물과 현상에 나타난 음과 양의 기운(모순과 대립의 통일), 목·화·토·금·수(나무·불·흙·쇠·물) 오행의 상극(相克)과 상생(相生)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본 원리에 유·불·선과 인도의 '업' 사상이 혼합되면서 지금과 같이 생년월일시(사주)로 사람의 기(氣)를 판별해 길흉화복의 운명을 추측하는 기복적인 점으로까지 발전되었다. 결국 사주·역학점은 사람이 태어날 때의 기후·계절의 변화나 정치·사회적 환경이 그 기를 결정해 운명에 영향을 준다고 보는 것이다. 비과학적 미신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의 관심을 묶어놓고 있는데, 이 점치는 일이 차츰 직업으로 자리잡고 보다 전문화되면서 다양한 갈래의 영역이 계속 개척되고 응용되어져나갔다.
여기에는 손의 활동이 반영되어 있다고 믿는 손금으로 미래 운명을 점치는 수상, 부르는 음의 유쾌함 여부로 환경이 영향을 받아 운명이 변한다는 성명학, 발바닥에 심장·간·폐 등의 모든 장기가 다 들어 있다고 믿고 병점을 치는 족상, 맥을 짚어보고 운을 가리는 맥상, 얼굴의 인상과 각 부분의 생김새로 살아나온 자취를 보며 미래를 점치는 관상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오랫동안 불교 승려로 지내다가 극적으로 기독교인이 된 김성화 목사(총신대 비교종교학 강사)는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모든 행위는 사람을 단순히 자연의 일부로 간주하는 동양사상의 테두리 안에서나 용인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주역이나 사주의 원리에는 '존재'의 개념은 있지만, 인격적인 '존재자'의 개념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람의 몸을 소우주로 간주해서 천지의 변화에 거의 기계적으로 반응하며 살아간다고 보는 사상, 인간과 자연 현상, 세계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적인 존재로 보기에 존재자이신 하나님은 못 보는 체계, 천기 변화나 별의 운행을 이치 탐구의 근거로 삼고 창조주 하나님의 다양하고 의외성이 많은 다스림에는 무지한 주역·사주의 원리는 결코 '존재자 신앙'의 기독교와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주역이나 사주의 원리들은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현대 산업사회에는 맞지 않는 것들이 많지요. 예를 들면 사주에 '역마살'이 끼어 운이 안 좋으리란 말은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녀야 사회·경제생활이 가능한 지금엔 해당되지 않습니다. '산은 산', '물은 물' 하는 식의 초연한 사고는 동양의 국가들이 과학적인 문명 발달에 뒤진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자연에 도전하고 응전하며 변화의 주체가 되어 발전을 이루고자 한 서양 국가들과는 역사부터가 다릅니다."
여기서의 기독교적 세계관이란 자연에 적응도 하지만 다스리고 정복하는 지혜도 함께 강조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관은 점이나 생활 주변의 모든 형태의 '점식' 사고나 관습에 매여 있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아직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진 못하고 있다.
신점·역술점, 영적으로는 똑같아
한때 한국 무당들의 왕으로 추앙받던 전 단군교 교주 김해경 씨는 자신의 책 '주여, 사탄의 왕관을 벗었나이다'(홍성사)에서 사탄의 계시를 직접 받고 신점을 치는 무당으로 변신해서 활동하다가 기독교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실감나게 소개한 바 있다. 그는 역학으로 보는 점 역시 강신점 못지 않게 사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며 이렇게 경고한다.
"원래 역학은 자연의 변화와 그 철학적 의미를 담은 학문의 하나로 시작되긴 했습니다. 예언의 기능보다 과거와 현재를 잘 살펴 미래에 대비하자는 '온고이지신'이 기본 정신이었지요. 그런데 이것이 중국 당대에 이르러 단순히 사람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사주와 연결되면서 잡기 비슷하게 변질됩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미래의 일과 관련되기 때문에 귀신이 틈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하게 되지요. 귀신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을 어느 정도 훔쳐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점은 귀신이 알아맞추는 점이지만 역술점이나 신점이나 영적으로 보면 똑같습니다."
역술이 과거의 인간사들을 신기하게 알아맞추고 미래를 그럴 듯하게 예견하는 등의 진실성 여부는 둘째 문제라고 본다. 기독교인도 '사주가 맞을지 모른다'라든지 '궁합이 안 좋다고 했는데' 하는 식으로 주춤거리면 마귀의 영적 방해 활동의 그물에 그대로 걸려든다는 것이다. 점쟁이들의 말은 생각을 낳고 생각은 행동을, 행동은 습관을 낳아 인격과 삶이 그 말대로 영향을 받고 변화되어 끌려다니게 된다. 결국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께만 관심을 집중시키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은 어떤 것이든 영적 반대 세력의 활동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관점이다.
점은 초등학문,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야
'포레스트 검프'라는 유명한 미국 영화의 끝 장면에 보면, 지능이 좀 모자라는 주인공 검프가 아내의 무덤 곁에 서서 울며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사람의 운명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어 각 사람은 그 정해진 궤도를 따라 바람에 이리저리 밀리며 힘겹게 떠다니는 가련한 존재들인지 모른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우리의 모든 계획이나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성경에는 운명 예정의 별자리점을 지지하는 듯한 말씀들이 있다(창 1:14, 욥 38:31, 사 47:13, 렘 10:2-3, 마 2:1-12). 그러나 점술사들이 별자리나 천기 변화만으로 인간의 운명을 점친다면 하나님은 특별한 예언이나 사건의 징조로만 그때그때 이용하실 뿐 다양한 섭리와 역사로 인간사를 주관하신다고 답할 수 있다. 또한 성경은 무엇보다 오묘한 일은 하나님께만 속해 있어 인간이 넘볼 영역이 아니라고 단정해두었다(신 29:29).
다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현재보다 운명이나 미래의 일에 지나치게 관심둘 때 그것은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케"(딤전 1:4) 되는 일로 변론만 낼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결국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는 초등학문에 머무는"(갈 4:8-11) 삶이 되어 소득없이 시간만 낭비케 한다. 그래서 성경은 술수를 '육체의 정욕'에 속한 일로 규정하고 있고(갈 5:20), 구약에서도 엄격히 복술을 금했다(신 18:9-14).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어이구, 내 팔자야"라거나, "다 팔자 소관이야", "팔자니 어쩔 수 없어"라는 체념섞인 말들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묘하게도 예수 믿는 기쁨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예수 믿고 팔자 고친다"가 된다. 실제로 어떤 역술인은 기독교인이 된 뒤에 "일반 불신자들은 타고난 기가 절대로 바뀌지 않아 일생을 운명대로 사는데, 예수 믿으면 신비롭게도 기가 바뀌어 모든 운명의 사슬을 벗고 온전히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음을 많이 본다"는 말도 한다. 그러나 이 말도 역술의 정당성을 전제한 견해여서 타당하다고 볼 수는 없을 듯싶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기질을 지으실 때 선하거나 악한 것으로 짓지 않고 모든 것이 보합되는 그릇으로서 마음의 형태만을 지으셨다고 보는 신학자들이 있다(전 7:29). 그래서 본질상 타락한 인간들에게 천성이 선하거나 악하다는 말은 하나님이 보실 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그 마음과 의지의 지향성이 어느 쪽에 쏠려 있는가 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된 관심사가 된다. 이는 선한 마음과 깨끗하거나 가난한 마음은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에서도 분별된다. 마음 그릇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인에게 운명을 따른다는 것은 성경에 밝혀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따른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을 것 같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미래에 다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예정해놓으셨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가를 따지시지 않고, 그 일을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동기와 뜻으로 했는가를 물으실 것이다.
물론 실제로 점집을 찾는 기독교인들을 계도하기 위해 전교회적인 대안을 마련해나가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 평신도들이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서 목회자를 도와 교인들의 상담자 역으로 적극 참여하는 것도 '점집행'을 막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가지들에 해당하는 현상들 하나 하나의 해답에 집착하기보다 '종교'가 아닌 참복음의 능력을 선포하고, 기복주의 추구 단계에 있는 어린 신자들을 차츰 성숙시켜나가는 제자훈련의 강화도 요긴하다. 또한 세태가 점점 더 어려워져갈수록 교회 안에 소외되는 지체가 없도록 공동체 의식을 확고히 다져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현상적인 점' 이전에 우리 삶 가운데 뿌리깊게 찾아들어와 마치 '제 자리'인 양 주인 행세를 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영적 우상들을 거세시키는 일은 확실히 다른 차원이다. 복음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약속된 창조섭리를 제한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파괴시키는 모든 세속화된 사고나 '점스런' 행태들은 기독교 세계관·윤리관의 단단한 무장 없이는 쉬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지식, 이 유혹은 인간의 타락 이후 늘 싸워온 싸움이었다. 그러나 미래는 '알고 있음'으로써가 아니라 '믿고 나아감'으로써 비로소 열리는 희망이다. 기독교의 십자가만이 세상의 점바람이 추구하는 '복'과는 정반대의 '고난'을 스스로 택할 수 있게 한다. 넓게 잡으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 한 분 외의 모든 외적인 것에 의지하려는 태도가 곧 점이요, 점의 정신이며, 거대한 이 시대의 미혹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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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은퇴한 옥한흠 목사의 담임목회 회고 & 교회갱신 선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