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교회의 갈등 해결은 '토론과 표결'
갈등이 있은 뒤 치유와 화해의 예배…한국교회는 갈등 해결할 기능이 마비
김동환 dr_donghwan@yahoo.co.uk [조회수 : 1240]
영국 런던의 한 감리교회 교구의 목사로서 사역하면서 최근 매우 흥미로운 일을 경험했다. 교구내의 한 교회에 심각한 분란이 일어났고 이 분란 때문에 교회가 갈라질 위기에 처하였다. 약 150여 명의 당회원을 가진 이 교회는 몇 가지 내부적인 갈등 때문에 교인끼리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심각한 분열상을 보였다. 이 교회의 갈등의 중심에는 목회자가 서 있었다. 교인의 약 반수는 '친 목사파'로 분류되고 다른 반수는 '반 목사파'로 분류되어 갈등하였다.
언뜻 보면 한국교회의 분열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는 듯했다. 이런 갈등 상황을 보면서 '교회는 갈등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무흠한 공동체는 아니라'는 나름의 결론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영국교회와 한국교회의 갈등 양상의 유사성이 있지만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회내의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영국교회는 개교회 갈등을 해결하는 확고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개교회 갈등이 개교회 차원에서 해결될 가능성이 없자 '교구'(circuit)가 그 문제를 해결하고 나섰다. 교구라 한다면 일정 지역을 관할하는 장로교의 노회, 감리교의 지방과 비슷한 조직체다. 교구는 먼저 교구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구 리더십 팀 안에서 갈등의 당사자들을 불러 내용을 조사한다. 그 내용을 듣고 현재 개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을 그 교회 담임목사가 해결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한다.
담임목사가 개교회 문제에 너무 깊이 연관된 당사자라는 판단이 들 경우 '정직 명령'을 내려 모든 목회직 수행을 정지시킨다. 목회자 정직 기간 동안 목회자는 해당교회의 어떤 사역에도 손을 떼야 하며 심지어 교인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는 것도 중지되어야 한다. 물론 이 기간 동안 목회자 사례비는 정상적으로 지불되고 해당교회에 필요한 목회활동들은 교구의 책임 하에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정작 흥미로운 대목은 다음 단계였다. 교구 리더십 팀들은 이 문제의 해결 당사자로서 권한을 갖지만 조사를 직접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교구 내의 리더십 팀들이 어찌되었건 문제가 된 교회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교구는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 다른 신뢰할만한 곳에 의뢰한다. 영국감리교회가 조사를 의뢰한 곳은 '영국장로교회'였다. 교구는 영국장로교회에 현재 문제가 되는 교회의 객관적인 조사와 문제해결책 제안을 위한 조사관을 추천을 의뢰했다.
영국장로교회는 기꺼이 두 사람을 추천했으며(1인의 목회자와 1인의 평신도) 이들은 수주 간 갈등 당사자들을 다 만나 충분한 이야기를 듣고 나름의 대안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하여 교구 리더십 팀에 먼저 보고하였다. 그런 다음 한 날을 잡아 갈등이 되고 있는 교회의 모든 당회원들을 소집해 조사관들이 작성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발표하였다. 물론 이 자리에 교구 리더십 팀 전원이 함께 자리했다.
조사관들은 자신들의 조사와 문제 해결 제안에 대해 찬반 토론을 하도록 했다. 찬반 토론에서 놀란 것은 문제가 된 내용들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종 논리적이고 침착한 의견개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심각한 갈등의 소지가 있는 회의 때마다 '고성'과 '삿대질'이 범람하는 한국교회 회의에 익숙했던 나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런 토론을 거친 뒤 조사관들은 자신들의 제안을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표결을 요청했다. 표결은 문제가 된 교회의 순수한 당회원들만 참여할 수 있었으며 표결은 압도적인 찬성으로 받아들여졌다. 조사관들은 모든 문제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해결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였고 서로 포옹을 하며 사과하는 시간을 갖도록 요청했다. 모든 당회원들은 기꺼이 그리했으며 심지어 눈물까지 짓는 이들도 있었다. 조사관들은 모든 마무리를 위해 '치유와 화해의 예배'를 함께 드릴 것을 제안했고 청중들은 박수로 받아들였다.
이 장면을 보며 근간에 한국교회의 간판교회들이 분란에 휩싸여 그동안 함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과 '말씀'을 나누던 형제자매가 한순간에 철천지 원수가 되는 모습이 뇌리에 스쳐갔다. 그러면서 왜 우리는 영국교회처럼 아름답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하는 자괴감이 들고 이들의 문제해결 방식에 대한 존경과 부러움의 마음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교회가 완전한 천국이 아닌 한 갈등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갈등을 상처 없이 봉합하고 새로운 교회 비전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의 확보다. 한국교회는 지금 이것이 없다. 아니, 시스템이 없다기보다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일단 분란을 겪게 되면 갈등이 끝간 데 없이 곧 바로 치닫는 것은 바로 시스템의 붕괴에 기인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갈등 조정 위한 시스템' 재구축에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다.
2005년 02월 14일 09: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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